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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

자료모음 2010/07/03 08:16

옥수수를 구해다가 알맹이는 먹고, 옥수수 알이 채워져 있는 옥수수 속대

(옥수수를 감싸고 있는 겉잎사귀나 수염 말고 옥수수 알이 박혀있는

아주 단단한 속대)를 칼로 여러 동강으로 토막 내서 주전자 같은데 넣고

물을 부은 다음 뼈다귀 고듯이 푹 삶아서 (삶는 동안 물이 부족해지면

중간 중간에 물을 보충해가면서) 그 물을 사람 입안에 넣어도 될 정도로

적당히 식혀 그 물을 마시지는 말고, 입안에 머금고 있다가 뱉어버리기를

열댓 번 반복하면(많이 아플 경우 며칠간 반복) 그 뒤부터는 죽을 때까지

평생 두 번 다시는 치통으로 고생하는 일도 없고,

따라서 치과에 갈일도 없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저작자 표시
Posted by 최문신

노·사·정 모여 선언, "노사 갈등 접고 국민 섬길 것"
지역 공공부문 노사 참여, 전지협, 행자부 등
09.09.28 17:17 ㅣ최종 업데이트 09.09.28 21:50 김철관 (3356605)
  
▲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식 지역 노사정 대표들이 국민섬김 선언문에 서명을 하고 있다. 정부 대표로 강병규 행안부 2차관이, 사측대표로 김상돈 서울메트로 사장이, 노측 대표로 정연수 전지협의장과 김재도 전공노련 위원장 등이 서명에 참여했다.
ⓒ 김철관
국민섬김 선언

행정자치부와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 전국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지협) 소속 사업장 노사가 모여 공공무분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을 채택했다.

 

이들 공공부문 노사정은 28일 오전 서울 성동구 용답동 서울메트로 교육문화센터 3층 다목적홀에서 '국민섬김 선언대회'를 갖고 국가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에게 차원 높은 공익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들 노사정은 국민섬김 선언 이유를 ▲국민생활 현장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는 지방공기업 당사자들이 지역 주민에게 최상의 공익적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결의를 함으로써 지방 공기업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삼을 것 ▲전국의 지방공기업 노사대표와 정부당국자의 소통의 계기를 마련할 것 ▲노사정간의 새로운 협력 모델의 모범창출을 통해 대국민 생활현장 서비스의 향상과 근로자의 근로조건의 개선․고용안정․생산성향상․상호소통을 함께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코자 할 것 등이라고 밝혔다.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강병규 차관, 신지호 의원, 김상돈 서울메트로사장 등 정부대표와 국회대표 그리고 사측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다.
ⓒ 김철관
신지호 의원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노측대표로 김재도 전공노련위원장, 정연수 전지협의장 등이 참석했다.
ⓒ 김철관
정연수 위원장

이날 선언식에는 신지호(국회행정안전위원회) 한나라당 의원, 강병규 행정안전부 2차관, 김상돈 서울메트로사장과 정연수 서울지하철공사 노조위원장, 유민근 서울SH공사 사장과 김재도 노조위원장, 이광영 인천지하철공사 사장과 이성희 노조위원장, 김인환 대구지하철공사 사장과 최종윤 노조위원장 등 전국 33개 지방공기업 노사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대회사를 한 정연수 위원장은 "지금 노동계가 KT노조, 쌍용차노조의 민주노총 탈퇴,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현대자동차 집행부 교체 등 복잡하고 혼돈 상태"라면서 "이런 혼돈 상태는 빅뱅을 통한 새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전단계로 생각된다. 앞으로 노동운동은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시장을 이해하고 관리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축사를 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은 "우리나라가 보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립과 갈등의 소모적 노사관계를 국민 섬김의 문화로 바꿔야 한다"면서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에 대해 법적, 제도적 지원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정연수(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김철관
정연수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신지호 한나라당의원이 축사를 하고 있다.
ⓒ 김철관
신지호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강병규 행정안전부 2차관이 축사를 하고 있다.
ⓒ 김철관
강변규 차관

이외에도 이달곤 행정안전부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강변규 행정안전부 2차관이 축사를 했고, 김재도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위원장, 김상돈 서울메트로 사장 등 노사 대표도 인사말을 했다.

 

지방 공공부문 노사정 대표들은 '국민섬김 선언문'에 서명했고, 인천시노사정대표인 이광영 인천지하철공사 사장과 김성희 노조위원장이 '국민섬김 선언문'을 낭독했다. 식이 끝나고 노사정 대표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이광영 인천지하철공사사장(우)과 이성희 노조위원장(좌)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 김철관
이광영 사장

'국민섬김 선언문'은 지방공공부문 노사가 상호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국민을 섬기는 선진적 노사 관계를 구축하고 경제 위기 극복과 국민 삶의 질 향상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았다.

 

▲노동조합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대립과 갈등의 노사문화를 청산하고, 국민 섬김의 공익적 서비스를 성실히 수행하는데 적극 앞장선다.

 

▲사용자는 경영효율을 높이고 고객서비스 개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안정과 복지향상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

 

▲정부는 선진적 노사관계를 장려하고 기업이 경제살리기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이날 공공부문 노사정 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했다.
ⓒ 김철관
공공부문 노사정사정

서울SH공사노조, 인천시교통공사노조, 경남개발공사노조, 광주도시공사노조 등 전국지방공기업노동조합연맹 소속 33개 단체대표들과 서울지하철노조, 대구지하철노조 등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 소속 단체대표들이 참석했다. 특히 임승룡 서울특별시공무원노조위원장 등 노조대표도 참석해 축하했다.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노사정 대표가 선언문에 서명을 하고 있다.
ⓒ 김철관
국민섬김선언문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노사정 대표가 국민섬김 선언문 서명 후 선언문을 펴고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김철관
국민섬김 선언문

  
▲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국민섬김' 선언 지역 공공부문 노사정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 김철관
국민섬김 선언

Posted by 최문신

☆*9人의 지혜*☆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 말라!



내가 수십년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마저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그 인내의 결실이 단 한번의 기회로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 주나라 태공망 강태공(姜太公) -





 


용모가 볼품없어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지 말라!


나는 어렸을때 보잘것 없는 외모때문에
불량배의 가랑지사이를 기어건너는 치욕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범증의 천거를 번번히 거부하며
십년간이나 말단벼슬아치 집극랑자리를 맴돌게했다.

항우에게 실망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나
연전연승하며 '해하'에서 항우를 완전히 섬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안겨줄때까지 갖은 수모를 견뎌내야했다.

나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몰골뒤로 천하웅비의 뜻을 감추고
뭇사람들의 갖은 야유와 모욕을 참아내며
기어코 천하 통일을 이룩한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 한나라 회음후 한신(韓信) -



 


한때 자존심과 명예를 짖밟힌 치욕을 당했다고 생(生)을 포기하지 말라!



나는 벗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무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가 짤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하였다.

당시 궁형의 수치를 못참고 자살하는 者가 많았으나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다 이룬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세된 남자가 모진 생명을 질기게 끌고간다는
온갖 조롱을 참아내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기>을 완성한 불세출의 역사가가 되었다.


- 사기의 작가 사마천(司馬遷) -



 


여자로 태어나서 하고픈 일을 못한다고 얼고만 있지 말라!



나는 아버지 무사확의 후처소생 둘째딸로 태어나
갓 14살때 최말단후궁 재인이 되어
당태종 이세민을 가무로써 섬겼다.

황궁생활 초기 나의 경쟁자는 여자였으나
비구니로 물러앉았다가 태종의 아들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황궁으로 돌아와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생산하며
황후가 된 후 부터
나는 남자들과 힘겨운 전쟁을 시작했다.

장손 무기를 내쳤고 상관의를 처형하였으며
심지어 나의 4명의 아들마저 차례로 버렸다.

내 나이 67살..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고나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女帝 聖神皇帝가 되어
15년간 천하를 다스렸다.



- 중국유일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 -





 


집안배경이 나빠서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고 변명하지 말라!



나는 오랑캐의 나라 원대말기 안휘성의 빈농 한족집안에서
태어나 17살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서 가믐과 기근에 찌든
험악한 세상과 맞서야 했고 전란통에 비적 무리의
일개 졸개가 되었을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으로 반란군의 2인자가 되어
원나라 몽골군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에도
양반사대부집안의 멸시와 견제속에서 시달려야했다.

나는 송곳하나 꼿을 땅이 없었던 빈농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었을때 조차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몽골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漢族)천하를 회복한
명나라의 태조황제가 되었다.



-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璋) -



 


나이가 어리다고 어미의 치마폭 뒤에 숨어 칭얼거리지 말라!



나는 8살때 황제가 되었고 13살때 결혼을 했으며
14살때부터 스스로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응석을 부릴 겨를도 없이
오삼계,상가희,경계무의 삼번난(三藩亂)을 제압하고
몽고를 평정했으며 티베트까지 원정했다.

나는 어린 나이의 어리광도 모른채 군주가 되어
61년간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다.



-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



 


돈이 없어서 재기할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말라!



나는 미천한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학업도 못마치고
전장(錢庄)에 들어가 똥오줌을 치우고 마루를 닦으며
잔신부름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다시 빈털隙隔?되는 과정을 겪고 또 겪었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아무리 빈손이라도
언제든지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푼도 가진게 없는 가운데도 스스로의 재기를 믿었고
내게 없는 것을 메꾸어주는 인재를 대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큰 상인이 되는데 돈 보다는 사람이 더욱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장사의 신
"상성(商聖)"이 되었다.


- 청대말 거상 호설암(胡雪巖) -





 


만년 2인자라고 보스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 말라!



나는 1935년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을 모시고
만리장정을 따라 나선 때부터 죽는 그날까지 41년동안
2인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공산당초기 탑리더의 코스를 밟던
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모택동을 중국혁명의 지도자로
추천하고 스스로를 낮췄던 것은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이 그에게 있음을 알았기때문이었다.

총리시절 행정보고를 함에 모주석의 침상옆에
꿇어 앉아야했고 방광암수술을 받고싶어도 毛의 허락이
떨어지지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루어야했다.

방광암으로 죽어가는 초읽기의 시간속에서도
美日과의 수교, 문화대혁명의 폐허속에 놓인 국가경제 재건,
등소평을 재 신임하는 권력의 재편성을 위해 촌음을 다투었다.
나는 사망하는 순간에도

"다 죽어가는 나 따위는 돌보지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라는 유언을 남기며 인민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1인자, 인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났다.



- 주은래(周恩來) -





 


잘 나가다 넘어지고 재기했다 다시 쓰러진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나는 문화대혁명때 반모주자파로 몰려 홍위병으로 부터
공개비판을 당했고, 잠시 일어났지만 하방당하여
강서성의 한 공장에서 4년간을 육체노동자로
버텨야했다.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다가
4인방의 농간에 또 다시 실각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해야했지만
모택동사후 정국수습용으로 재 기용된 후
화국봉과의 5년 권력투쟁끝에 최고실권을 장악했다.

나는 세번 쓰러지고 네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을 견뎌내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처럼 개혁개방의
총 설계사가 되었다.



- 등소평 -
Posted by 최문신